2008년 8월 1일 금요일

목회 칼럼: 용서의 출발점 (7.13.08)

용서의 출발점은 뭐니뭐니해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이라 하겠다.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분노와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어하는 복수심은 우리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정서요, 이런 정서적인 센서가 없다면, 우리는 어쩌면 관계가 깨어진 데(Boundary Issue)에 대한 인식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의 센서가 인식하는 [fair-unfair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용서와 관계 회복에 이르게 해 준다.

사실, 긍휼로 넘어서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 긍휼은, 상황이나 여건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은 물리적 정서적인 타격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감안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각오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이 언약적인 긍휼의 씨앗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표현된 것이며, 결국은 우리의 배역한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런 긍휼을 맛본 자들, 이런 긍휼의 수혜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다. 따라서 성도의 가장 으뜸가는 본분은 바로 이 긍휼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실제적으로 더욱 알아 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이 큰 긍휼에 기초하여 우리도 서로 간에 작은 긍휼을 반향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주님의 비유로 말하자면, 일만 달란트의 은혜에 기초하여 백 데나리온의 은혜를 베푸는 삶이다.

이렇게 볼 때, 용서의 비결은 긍휼에 있는 것이지, 화술이나 대인관계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기술이 모자라거나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긍휼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긍휼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긍휼히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으니, 하나님은 긍휼이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서 서로서로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셨다면,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긍휼의 창고에 무상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 긍휼의 비밀 열쇠를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는 성도들이 다 되도록 하자.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