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일 금요일

설교 본문 연구 (7.13.08)

용서 받은 성도의 제일가는 본분: 용서하는 삶 (마 6:12/ 18:15-35)

1.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크게 두 부분, 즉 하나님에 관한 기도와
우리 인간의 필요에 관한 기도로 나눌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크게 3가지로 나누셨다. 그 중 한 가지가 용서에 대한 것이다. 용서의 문제가 어째서 그렇게 중요한가? (참조: 14-15절)
2. 사실 우리의 일용할 [육체적인] 양식의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용서의 문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3. 그런데, 이 기도에는 단서 구절이 붙어 있다. 여기서 “같이”란,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무슨 뜻인가?
4. 7:1-5은 용서에 대한 기도의 해설판이라고 할 수 있다. (cf.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의 해설판이 6:19-34인 것처럼) 즉 주님께서는 서로 OO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가?
5. 우리가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비판하기 전에 왜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만 할까?
6. 마 18:15-35의 비유를 빌자면, 주님께서는 우리 눈의 들보(일만 달란트)를 제거해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백 데나리온)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7. 이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동기 역시, 서로 서로 죄를 용서하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기 위함이다. 18:35와 6:14-15의 상응성을 생각해 보라.
8. 18:15은 회개의 책임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있지만, 견책(rebuking)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9. 용서의 문제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18:18-20). 혹 오늘날 우리의 관계가 교회 안에서마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이 말씀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 주 말씀: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길 (막 8: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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