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1일 월요일

"목회자가 웅변가ㆍ만담가로 변해간다"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3.31 17:05 | 최종수정 2008.03.31 22:32

이종성 원장, 한국교회언론회 포럼서 지적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성직자의 귀한 사명을 버리고 CEO 감투를 쓰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계의 원로 이종성 한국기독교학술원장이 31일 "지난 60여년간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목회자상이 크게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박봉상 목사)가 '한국교회 나아갈 길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이 원장은 "한국교회가 지난 60년 동안 작은 묘목에서 큰 나무로 성장한 과정은 선교사역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기록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변질 상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목회자상이 변질된 사례로 △예언자적 품격은 없어지고 웅변가로 변해가며 △감언이설로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장로교회 예배신학의 표준인 설교단과 성찬식이 경시되며 △진지한 성직자상은 사라지고 교인을 웃게 하는 만담가 직전의 수준에 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목회지를 회사로 생각하고 자신을 유능한 CEO로 착각하며 △어떤 기관에 회장이 수명, 부회장이 수십명일 정도로 감투욕의 노예가 되고 있으며 △성령을 받았다며 무당적 관습에 빠져 있고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 한다고 변해가는 목회자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전통적 목회자들은 소명감이 확실하고, 예언자적 기질을 가졌으며, 사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면서 "사회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목회자는 교회성장의 기술을 가르치는 CEO가 아니라 복음의 CEO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이억주 칼빈대 교수는 "성직자는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께 소명(calling)된 사람들"이라면서 "한 사회나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힘에 있다는 역사학자 랑케의 지적처럼 교회는 사회도덕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초대교회는 군주국가, 계급사회 속에 있었지만 오늘날은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종교다원주의시대에 들어서 있다"면서 "내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며, 밖으로 반기독교운동 등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교회가 살아날 길은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인환 성은감리교회 목사는 "개신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매스컴을 통해 나타난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어서 이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익 신촌성결교회 목사는 "세상을 향해 사랑과 화합을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교파, 사상, 계층 등 모든 면에서 분열과 대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영적 권위를 가져야 하며, 나아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양회 소고

수양회, 더구나 전교우 수양회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중고등부나 대학-청년부만의 수양회라면, 시간도 있고, 젊음도 있고, 상대적으로 그리 신경쓸 많지 않다. 여차하면 야산에서 캠프를 수도 있고, 바닷가에서 야영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전체가 움직이는 것은 고려해야할 요소가 아마도 갑절은 많아지게 된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하다 못해 baby sitter 준비해야 하고, 연로하신 분들의 교통편이나 숙박, 그리고 임산부들도 따로 배려해야 한다.

이런 cost 생각하면, 사실상 전교우 수양회를 계획하는 것은, 더구나 8 출산을 앞둔 가정들이 있는 금년에는 더더우기 무리한 시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작년에 기꺼이 발걸음을 하셨던 4 권사님/집사님들을 생각해 보면, cost 지불하는 데에 따르는 유익 또한 그에 못지 않음을 경험하였다고 하겠다.

이웃간은 물론, 같은 가족끼리도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대 도시인들의 속에서, 주님 안에서 함께 가족이 교우들이 남녀노소간에 흉허물없이, 함께 노래하고, 담소하고, 게임도 하고 한데 어우러질 있다면,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기회라고 한다면, 적어도 일년에 차례씩은, 기꺼이 댓가를 지불하여 봄직하지 않을까?

개미 쳇바퀴 도는 같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뭔가 일상을 일탈하고 변화가 있을 있다면, 자체로서도 일단 환영해 일이다. 가족끼리 휴가를 가는데도, 시간을 맞추어야 하고, 돈도 들어야 할텐데, 하물며 교회 전체가 움직이는 데는 당연히 미리 미리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우들 각자가, 나와 상관없는 잔치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잔치임을 바로 인식하고,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시간을 비우고, 회비를 내고 등록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하리라.

마침 금년에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캠프장을 잡게 되어서, 부득이한 경우에는 출퇴근도 고려할 있는 거리인만큼 명실공히 전교우 수양회가 되도록 하면 좋겠다. 아울러서 수양회 준비위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 바라며, 중고등부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에도 적극 참여를 당부한다.

설교요약: 부활 신앙의 담대함

1. 바울 일행이 환난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을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4:16)


2. 바울이 자신이 당하는 환난을 잠시적이오 경한 것으로 여기는 근거는 무엇인가? (4:17)


3. 바울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려는 근거는 무엇인가? (4:18)


4. 바울은 이런 지식을 어디서, 어떻게 입수하게 되었을까?


5. 이런 지식에 근거해 , 바울 일행이 소원하는 바가 따로 있었던 (5:2-4)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마디로 무엇인가? (5:6, 8)


6. 비록 우리가 아직 땅에 거하고 있지만, 우리는 보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5:7). 우리들의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7. 우리가 부활하기 전에 먼저 죽음을 맛보든지, 아니면 죽음을 보지 않고 부활하게 되든지 우리의 삶의 목표는 이제 한가지다(5:9). 무엇인가?


8. 헬라철학에 의하면, 우리의 몸은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육체적인 것을 하찮게 취급하였다. 결과 몸으로 하는 죄악들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5:10 비춰볼 이것이 사실인가? 재판장으로 다시 오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9. 내게도 부활신앙의 담대함이 있는가? 그렇다면, 인생의 목표와 삶의 자세는 어떠한가? 과연 부활신앙의 담대함에 걸맞는다고 있는가?


다음 설교: 언약의 규정 6 살인하지 말라! ( 20:13/ 5:21-26)

2008년 3월 23일 일요일

설교요약: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제자들 (요한복음 20:11-23)-오경석 전도사

1. 예수님의 부활하심을알지 못하는 마리아와 제자들:

a. 마리아와 제자들의 부활에의 몰이해

b. 몰이해로 인한 무지와 불안

2. 예수님의 나타나심:

a.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안

b.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

i. 하나님의 자녀됨

ii. 하나님의 전권대사:성령과 소명

3.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들의 :

다음 설교: 부활 신앙에서 오는 담대함 (고후 5:1-10)

부활절 메세지(1): 올리버 전도사

The PRs Of The Resurrection

I. The Privileges of the Resurrection

a. The Privilege of following the Son of God (Rom 1:1-4)

b. The Privilege of having true Hope (1 Pet 1:3)

c. The Privilege of enjoying a future Resurrection (Rom 8:11; 1 Cor 6:14; 15:12-58; 2 Cor 4:14)

II. The Responsibilities of the Resurrection

a. The Responsibility to die to Sin (Rom 6:4, 11-14)

b. The Responsibility to do the Work of the Lord (1 Cor 15:58)

목회칼럼: 주님의 부활을 다시 생각한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부활의 감흥이 사라지는 같다. 부활절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작년에 부르던 찬송 금년에도 부르고, 작년에 읽었던 성경 금년에 읽지 않는가? 물론 기념이란, 하나의 상징이지, 기념식을 한다고 해서, 없던 실체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부활절 기념 주일 시간 예배에 지나친 기대를 걸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부활의 메시지가 희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마도 초대교회에서부터 우리 믿음의 선배들 역시 이런 회의를 겪었을 것이다.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떠나신 우리 주님께서 속히 돌아오시지 않은 세월만 자꾸 흘러온 연고가 아니었을까? 당시 일대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이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가져온 사건이었기에, 너무나 익사이팅한 나머지 처음에는 정신없이 복음을 전하느라 눈코 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차츰 안정이 되어서 일상을 되찾게 되고, 지나서는 도리어 핍박이 시작되면서,그들의 신앙의 중심은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는 흥분에서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소망으로 옮겨가야 했을 것이다.

우리 신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 것을 전제로 하며, 사실 겉보기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안식일 회당에 나가던 것을 이제는 주일에 회당에 나가고, 대신 어떤 이들은 안식일날 심지어 일을 나가야 했을 것이다.

마디로, 이들에게 부활신앙은 이제 주님의 부활에 대한 차원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 신자들이 다시 부활하게 것을 내다보는 소망신앙으로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신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고린도 교우들을 혹독하게 질책하면서, 만일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주님께서도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강변하였다.(고전 15:13)

우리는 어떤가?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우리 모든 신자들도 부활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게 것이다.(요일 3:2) 그리고 아직은 희미한 채로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때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고전 13:12)

따라서 우리에게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며, 주님을 만나뵐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적당히 시늉만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도리어우리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쓰고 애쓸 것이며, 무엇을 하든지 신명을 바쳐서 열심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것이다. (고전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