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목회칼럼(11.18.07) 감사절의 한결같은 화두?

감사절의 한결같은 화두?

산업혁명과 현대 문명의 이기들이 축적해 놓은 여러 가지 풍요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기가 더 힘들어진 현대인들과, 감사절의 기원이 된 당시 청교도들을 비교해 보노라면, 감사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감사는 결코 환경적인 여건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다. 환경만 놓고 생각하면, 청교도들은 사실 감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함께 배를 탔던 가족들과 동료들의 절반이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먼저 세상을 떠난 데다가, 어설픈 농사 솜씨로 수확한 농산물이라고 해야, 호박과 옥수수 그리고 터키 등 어찌 보면 본국(영국)을 떠나오기 이전의 생활 수준과는 비교가 안 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의 감사는 겉으로 드러난 가시적인 현실 그 이면에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다. 상황이란 늘 변화무쌍하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국으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열 명 가운데 한 명 꼴은 끼니가 없어 굶주린 상태를 경험했다고 하니, 우리의 인생사에 영원한 안전이란 기대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만일 우리의 감사가 이런 변화무쌍한 상황에 좌우된다면, 우리의 감사도 역시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 오늘은 참 감사하네요. 그런데 내일은 어떨는지???'

셋째, 따라서, 그들의 감사는 현재적인 것만이 아니라, 과거적인 것이요 동시에 미래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감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통틀어서 궁극적인 안전과 샬롬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안목에서 우러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불미스럽고 황당하고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할지라도, 또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또 장차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감사란 결국 내 주변의 상황//환경이 내 목전의 이익이나, 내가 가진 제한된 안목에 얼마나 부합하게 전개되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신뢰하는 문제이다.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그리고 그분의 어떠하심, 곧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안전이요, 감사의 원천이란 말이다.

, 우리 안에 이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은, 벌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진정한 감사란 환경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청교도들이 곱씹어보아야 할 감사절의 화두도 역시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얼마나 믿는가?

댓글 1개:

교인 :

즉, 우리 안에 이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은, 벌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진정한 감사란 환경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