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일요일

목회칼럼: 주님의 부활을 다시 생각한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부활의 감흥이 사라지는 같다. 부활절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작년에 부르던 찬송 금년에도 부르고, 작년에 읽었던 성경 금년에 읽지 않는가? 물론 기념이란, 하나의 상징이지, 기념식을 한다고 해서, 없던 실체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부활절 기념 주일 시간 예배에 지나친 기대를 걸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부활의 메시지가 희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마도 초대교회에서부터 우리 믿음의 선배들 역시 이런 회의를 겪었을 것이다.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떠나신 우리 주님께서 속히 돌아오시지 않은 세월만 자꾸 흘러온 연고가 아니었을까? 당시 일대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이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가져온 사건이었기에, 너무나 익사이팅한 나머지 처음에는 정신없이 복음을 전하느라 눈코 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차츰 안정이 되어서 일상을 되찾게 되고, 지나서는 도리어 핍박이 시작되면서,그들의 신앙의 중심은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는 흥분에서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소망으로 옮겨가야 했을 것이다.

우리 신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 것을 전제로 하며, 사실 겉보기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안식일 회당에 나가던 것을 이제는 주일에 회당에 나가고, 대신 어떤 이들은 안식일날 심지어 일을 나가야 했을 것이다.

마디로, 이들에게 부활신앙은 이제 주님의 부활에 대한 차원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 신자들이 다시 부활하게 것을 내다보는 소망신앙으로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신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고린도 교우들을 혹독하게 질책하면서, 만일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주님께서도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강변하였다.(고전 15:13)

우리는 어떤가?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우리 모든 신자들도 부활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게 것이다.(요일 3:2) 그리고 아직은 희미한 채로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때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고전 13:12)

따라서 우리에게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며, 주님을 만나뵐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적당히 시늉만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도리어우리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쓰고 애쓸 것이며, 무엇을 하든지 신명을 바쳐서 열심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것이다. (고전 15:58)

댓글 1개:

익명 :

더 새롭고 부활의 감흥이 희미해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개인의 신앙문제이자
공동체(예배위원회)의 문제이기도 함을
절감합니다.
하나하나씩 더 좋게 개선해 나가도록
예배위원회 일원으로써 노력해야지요.
현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