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일요일

목회칼럼 : 안식일을 다시 생각한다(3)

(지난 주에 이어)

그렇다면, 오늘 현대 도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새언약 백성들에게 주일을 의미있게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폴 쥬엣의 "주일의 참 뜻"(The Lord's Day: A Theological Guide to the Christian Day of Worship, 개혁주의 신행협회 역간) 마지막 장 "주일 성수"에 소개되어 있는 제안을 참조해 보자: 첫째,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일에서 쉬어야 한다는 진리를 말하는 예표와 모형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 안식일의 영적 본질과 목적은 인간이 마치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은 것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기 일에서 떠나는 것이다."

둘째, 이 날을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지 않으면 안된다. 주일의 안식은 일을 중단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신자들끼리 친교를 나누기 위해 같이 모이는 것으로 더 잘 표현된다. 주일은 개인의 날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날이다. 부활한 첫날밤에 제자들의 모임을 생각해 보던지, 오순절 다락방의 집회를 생각해 보던지 간에 교회는 주일의 집회와 함께 탄생했다. 모이지 않고서는 교회가 살아남을 수 없고, 또 교회 없이 그리스도인은 살아 남을 수 없다. 다른 어느 날보다 주일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 간의 진정한 교제를 깊게 확립하고 두터이 하는 기독교 신앙의 집합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시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하겠다.

셋째, 이 날은 기쁨 없이는 올바르게 지키기가 불가능하다. 주일의 안식은 축제일의 안식이다. , '주께서 살아나셨다'는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본래적인 기쁨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주일을 하나의 비참한 휴일로 바꾸어 놓는 법규와 규칙들이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여기 있다. 우리는 또 다시, "어린 시절의 장난이나 신선한 공기나 정원의 아름다움까지도 금하면서, 교회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산보도 못하게 함으로써, 사소한 양심의 가책으로 애초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그 고상한 안식일의 비전을 망쳐 놓았던" 청교도들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일이 주님에게 속한 날임을, 곧 이 날을 거룩케 하고 성별케 하신 이는 바로 주님 자신이심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주일을 올바르게 지킬 수 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날은 이전의 주님과 함께 했던 날과 달랐다. 음식(성만찬을 위한)도 다른 날과 달랐다. 즉 이 날은 살아나신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날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날을 주의 날, 곧 주일이라고 불렀을 때 이것은 하나님을 한 날에다 한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분이 우리의 모든 날의 주가 되심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다. 주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일에서의 자유를 사용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두며, 우리의 생활에서 실천할 때, 우리는 그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셈이 된다. 우리가 이 날을 이렇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평일의 모든 휴식에도 빛을 비추어 줄 것이다. 따라서, "평일이 고생스러울수록 축제일은 기쁘다"(괴테)는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 모두를 그 주 첫 날의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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