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일 월요일

목회 칼럼 매머니즘(物神主義):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끈질긴 우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대치하던 냉전시대는 끝났다.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던 급진적 유토피아 이데올로기의 실험은 100여년 만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자본주의의 승리를 담보해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이는 막스가 제기한 문제의식조차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유치한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자본을 매개로 하여 움직이는 현대 사회는, 자본이 힘이며 신()임을, 그야말로 '까놓고', 공언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자본의 논리로 본다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의 빈부차가 점점 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리라. 사실, 부자들이 치부하면 할수록 가난한 자들은 더욱 궁핍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자들이 늘어날수록 부자들은 그만큼 더 치부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다. 이런 현대 사회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까?! 장차 우리 사회는 바로 이 자본/빈부의 격차로 말미암아 끔찍한 재앙과 혼란을 겪게될 것이다.

이런 논리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재화는 무한정 공급되는 그 무엇이, 더 이상 아니다. 그리하여 한정된 재화를 서로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되었고, 그러자 자연히 재화는 막강한 ''을 가진 존재로 더욱 부상하게 되었고, 인간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저마다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이런 재화의 축적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가나안 땅의 바알리즘이요, 주님께서 경계하신 매머니즘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이런 거대한 신상을 제거하지 않은 채, 그저 치부의 방식이 그나마 조금 덜 악해지도록 하기 위해 법규와 공권력을 강화하거나, 분배의 불균형을 보완해보려는 시혜적 복지제도만으로는 이런 우상숭배의 폐단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기독교 써클 일각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앙/성경의 이름을 빌어서 물질적인 축복을 어떻게든 정당화해 보려고 하는 시도들 역시, 비록 세인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넓게 본다면, 이런 매머니즘이라는 사이비 종교의 아류가 아닐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도, 우리는 그 근원에는 관심이 없고, 지극히 작은 지류를 흐르다가 고여있는 물 한 웅덩이에 주목하고 있는 꼴은 아닐까?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신데, 언제까지 우리는 아버지는 보지 못하고, 아버지 손에 들린 장난감에 주목하려 드는 유치한 상태에 머무를 것인가?

비록 막스가, 무릇 인간의 마음이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밑빠진 독과 같은 것임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 사실이나, 우리의 이런 유치함에 비한다면, 차라리 막스는 우리와는 달리 유토피아를 적어도 꿈꾸었던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호 통재라, 이 매머니즘은 유토피아의 꿈과 이데올로기마저 무색하게 만들었으니, 이런 막무가내의 물신(物神)의 손아귀에서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주님의 대답은 오늘도 여전히 동일하리라: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댓글 1개:

익명 :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Samuel 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