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일 월요일

퍼뮤니케이션: 우리 엄마 파이팅(지난 주에 이어)

다음 글은 한국 국립 특수교육원의 2007 장애인식 수기 모집 입선작으로서 안지혜(서울 가주 초등학교)양의 글입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언니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수영도 엄마에게 배웠다. 자전거도 엄마에게 배웠다. 수영은 레슨비 아낀다고 엄마에게 배우라고 해서 배웠다. 엄마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수영하나 유심히 관찰해 보신 후 혼자 이렇게 저렇게 하기를 반복하면서 물에 뜨고 호흡도 터득하여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셨다고 한다.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자전거를 사 가지고 오셔서, 잘 걷지도 못하는 엄마를 붙잡고 자전거를 배워야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전거 배우기를 권하셨다고 한다. 배우지 않으려고 떼를 쓸 때는 할머니는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며, 몇 날 몇 달을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결국은 자전거를 탈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영은 이것보다 쉽겠지 하고 용기를 내어 해보셨다는 것이다. 수영을 내가 해보니 혼자 배우는 것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이 수영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봤을 때 웃었을 것 같아서 창피했을 것이다. 엄마도 외할머니처럼 내가 배우지 않으려는 것을 억지로 가르치시며 나에게 수영을 가르치셨다. 여기서도 동생은 나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동생은 내가 못하는 배영도 배웠다. 수영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정상인과 달라도 그런 것에 내 동생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동생의 그런 모습이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동생을 닮아가려고도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우리 집이 좀 더 부자이길 바랬고, 우리 엄마가 점점 나아져 정상인이 되길 기다리며 지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두 딸이 커갈수록 더 힘들어하시고 약해지셨다. 엄마의 다리와 허리를 주물러 드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장애를 가지고 계신데도 장애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걸음만 잘 못 걸으시는 거지, 여느 엄마와도 다른 게 조금도 없으신 엄마다. 엄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하면서 나도 다른 사람 눈치보는 게 조금씩 없어졌다. 나도 편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몫이 크다.

5학년 때는 학급 부회장을 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려 한 학기를 잘 마무리했다. 엄마도 임원 엄마들끼리 잘 지내시고 학급 일을 잘 도와주셨다. 6학년이 되어서는 학급 회장이 되고 전교 임원선거에 나가 부회장이 되었다. 엄마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하지 않았으면 난 이런 곳에 나가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회장이 되었던 안되었던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내내 같은 곳에 계셨다. 그러나 나의 생각 차이로 1-6학년까지 엄마의 모습이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아주 만족스럽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엄마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봐도 이젠 부끄럽지 않다.

목발 짚은 모습이나 보조기가 환히 다 보이는 반바지를 입고 계셔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다른 친구 엄마들과 엄마가 모여 의논하고 얘기하실 때에도 다른 엄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하는 생각은 점점 지워져갔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엄마의 다리가 나아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비증세가 심해지지 않고 허리도 덜 아프고 다리 힘이 덜 빠지길 기도드리며, 열심히 도와드리려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장애엄마를 둔 것에 속상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부러워만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장애친구들을 잘 이해하고 돌봐주는데 노력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내 동생은 나보다 의젓하다.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학급에 있는 장애친구들은 돌아가며 다 동생 짝이 되었다. 장애를 가진 엄마 때문인지 이해가 더 높아 계속 장애를 가진 친구의 짝이 되어 도움을 주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 힘내세요! 동생도 파이팅! 오늘부터라도 마음을 넓게 가지고 세상을 봐야겠다. 장애인도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고, 봉사하며 살 것이다. (from Joy 장애선교회 뉴스레터, 2008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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