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8일 월요일

목회 칼럼: 거짓말하는 "능력"

중앙일보 2. 26. 08 분수대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새정부의 각료들의 거짓말을 꼬집으면서 다음과 같이 논설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장남 카인은 동생을 시기해 들판에서 살해한다. 바로 그날 하나님이 직접 묻는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카인은 말한다.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성서에 따르면, 우리는 살인자의 자손이요, 그것도 하나님에게 대놓고 거짓말을 한 사람의 자손이기도 하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배경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가려내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 “거짓말은 2의 천성”이라고 말했다. 서로 잘 아는 두 사람이 10분간 대화를 하면서 보통 2~3개의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거짓말할 수 있는 것도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때로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악인을 속여야 했던 경우들도 찾아 볼 수 있다. 허지만, '거짓말'이라고 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대부분 이기적인 동기로 상대방을 조정하고 속이려는 경우라고 하겠다.

이런 거짓말은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속임을 당하는 타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 공동체 안에 속한 자기 자신도 파괴하는 결과가 야기하게 된다.(늑대소년을 생각해 보라!)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죄책감이 생겨나고 자격지심이 생기게 됨으로써,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 관계도 순식간에 파괴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들이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 것, 특히 최종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과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 것을 언약의 규정으로 요구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재판의 권한을 위임받은 법정에서마저도 거짓이 진실을 덮어 가리게 되면, 진실과 정의의 기준이 모호해지게 되며, 그것을 수호할 명분도 무의미해지게 된다. 따라서 그만큼 결정적인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고 하겠다.

우리 신약의 제자들은 이런 미니멈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각기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는 관계를 통해 주님의 몸을 세워나가야 한다. 도리어 우리의 진실한 위로 한 마디가 은혜를 끼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에 거짓을 버리고, 선한 말로 서로를 세워주고 공동체를 세우는 진실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리라. 거짓말하는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이런 진짜 능력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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