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8일 목요일

[책] 여성과 초대 기독교 (서원모/방성규/이정숙/서현선 편역)

2월 한달은 입덧으로 몸이 힘들고 한없이 게을러져서 하루에 책 한장 읽기도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펼쳐든 책이 워낙 쉽게 읽기 어려운 글들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큰 맘을 먹고 후기를 남깁니다.

이 책은 3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초대 교회의 기록들 중에 여성에 의하여 쓰여졌거나, 여성에 대하여 쓰여진 글을 모아 번역한 책입니다.
역사에 위대한 이름으로 남은 많은 남성 순교자들이나 남성 신학자들에 비해 그 기록은 매우 적지만, 비록 적은 이 기록들에서도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여성 순교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렸고, 4세기초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을 자청하며 거룩한 사랑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케 합니다.

기억에 남은 몇가지만 소개합니다.
현존하는 글들 가운데 기독교 여성이 쓴 가장 오래된 글인 “페르페투아의 순교” 는 202-3년경에 순교한 페르페투아와 그녀의 몸종 펠리키타스의 순교를 기록합니다. 특히나 페르페투아는 21세로 젖먹이의 엄마였고, 펠리키타스는 만삭의 몸으로 투옥되어 순교하기 이틀전 팔삭동이를 출산한 여인이었습니다. 육체적인 연약함 속에서도 이들의 믿음과 용기는 감옥 안에서도 남자신도들 못지않았고, 완전히 벌거벗겨진 몸으로 미친 소가 풀려있는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갈때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스러운 죽음을 기뻐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구경꾼들에게도 너무 적나라해서 다시 옷을 입혀왔다고 하네요. 자신들의 분신인 자녀를 남은 가족들에게 맡기고, 신앙을 부인하여 목숨을 부지하기를 바라는 그들을 오히려 설득하며 전도하며,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기쁘고 당당하게 육신을 버리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시대적, 사회적, 신학적 한계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은 일단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원죄를 짓게한 최초의 인간, 하와가 바로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본성적으로 악한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남성이 그렇게 보았을 뿐만아니라 여성들 자신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였고, 거룩한 성인일수록 자신의 여성성을 감추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남성의 본성을 닮으려 하였습니다. 기록에서도 남편과 동역한 부인의 모습보다는 처녀이거나 과부로 남은 여인의 모습이 많습니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는 여인들은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로서의 삶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라는 두가지를 양극단에 놓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고민들이 주변에 종종 있고, 또한 내 안에서도 아직도 그러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는 것을 발견하며 놀랍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할 인간 본성과 사고의 한계… 육신의 연약함일까요?

이당시 남성 신학자들은 여성이 어떠한 결혼을 하여야 하고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서 어떠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해야하는지 권면하는 글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독교적 가정관은 그당시 극도로 비윤리적이고 문란했던 로마의 결혼관에 좋은 모범과 도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홀로 사는 여성 성자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처녀들이나 과부들의 물질적, 영적 어머니가 되어 평생을 그들을 돌보고 섬기며 살아가는데, 그당시 여성으로서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을 보여줍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 책이었지만, “사막 교부들의 금언” 가운데 그러한 여성 수도사들이 남긴 금언 중에 왠지 모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나눕니다. 신클레티카의 말입니다.
“수도원 안에 사는 동안에는 금욕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금욕은 교만을 가르치지만 순종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는 수도원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한 순종을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댓글 2개:

익명 :

1.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아름다운 선진들의 신앙의 유산을 우리가 찿아내어 나누는 일이 우리의 신앙을 edification 하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2.
'금욕은 교만을 가르치지만 순종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율법보다 더 큰 사랑의 법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현 사무엘

익명 :

"Nothing in you that has not died will ever be raised from the dead."

from Mere Christianity by
C.S. Lewis

'순교'가 우리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야 됨을 느낍니다.

현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