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0일 일요일

퍼뮤니케이션: 예수는 과연 역사적인 인물인가?

아무도 본 적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의 의미이다. 그분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는 인간들에게 올바른 길이 되시고, 거짓이 만연하여 참된 것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진리이시며,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인간에게 생명이 되시기 위해 오셨으니, 그분은 정녕 만민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과연 역사적인 인물이었다는 데 대한 증거가 있는가?

중세기의 수도자요 학자였던 Dionysius Exiguus(550 AD)는 로마 건국 754년을 예수의 탄신해로 계산했으나, 사학자들의 엄밀한 조사에 의하면 4년 이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Herod 대제 생존시에 탄생하였는데, 그 헤롯은 로마 건국 750년 여리고에서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적어도 4년 또는 그 이상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의 내증 외에 기타 문헌에서 예수의 역사성을 증거하는 근거를 몇 가지만 찾아본다면, 1)Cornelius Tacitus(56-115 AD)는, 그의 Annales(15,44)에서 Nero 황제 당시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사건을 언급하면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기독교의 창설자 예수 그리스도는 Tiberius 치하 때에 총독이었던 Pontius Pilatus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2)Plinius Caecilius Secundus(61-114 AD)는 Trajanus 황제의 특사로서 비티니아(지금의 터키의 이지미트 지역)에서 2년간의 파견 근무를 하던 중, 황제에게 보낸 서신 96과 97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미사와 성찬식에 대해 언급하였다.
3)Plinius의 친구이자 뛰어난 전기작가인 Suetonius(69-140 AD)는 De vita Caesarum(황제들의 생애)에서 Claudius 재위 중인 49년 "Chrestus의 사주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가 로마에서 활동중인 것으로 착각했으며, Christus를 Chrestus로 잘못 표기하였다. 이 때 추방되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고린도에서 장막 깁는 일을 하면서 사도 바울을 만난 것(행 18:1-3)으로 추정된다.
4)Flavius Josephus(37-101 AD)는 이스라엘 독립군 사령관이었으나, 로마와 싸우다가 항복하여 로마에 귀화하게 되었지만, 말년에 애국심의 발로로 조국 이스라엘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Antiquitates Judaicate(유대 고대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형을 언급하고 있다. (20, 200/9,1)
5)6세기 경에 편집이 완료된 것으로 추정되는(그래서 이 문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바빌론 탈무드에 보면,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전달수 신부, 중앙일보 12/26/07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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