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6일 월요일

목회 칼럼: 하나님의 인도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지도책이나 설계도처럼 미리 보여주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미리 알게 해 놓으셨다면, 우리는 저마다 힘든 길을 피하여 쉬운 길로 가기 위해 애쓸 것이며, 그리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세심한 설계도를 이탈하여 도리어 트러블을 만들 것이며, 소위 성공가도로 보이는 프리웨이는 트래픽 때문에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크게 균형을 잃고 있다. 즉 일부 직업 영역에는 사람들이 심하게 몰리는 반면, 어떤 영역에는 사람들이 너무 모자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걸어온 여정을 뒤돌아볼 때라야 선명해진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훤히 미리 보여주시지는 않지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세심한 손길로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 가운데서 한 걸음씩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비록 그 모든 여정을 한 눈에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란 물론 과거의 사건이 바탕이 되지만, 그러나 장래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하나님의 인도는 사실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뭔가 잘 보여야 하고, 그럴듯한 망원렌즈를 준비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믿음이요, 순종을 각오한 신뢰이다. 인도하시는 것은 그분이 하실 일이오, 우리의 할 일은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몇 가지 통로를 통해 당신의 인도하시는 방식을 우리가 가늠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으셨다. 예를 들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에 배치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성경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인도를 받았는지를 보면 그분의 인도하시는 지침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이나 우리 주변 사람들의 사랑어린 충언들을 거룩한 지식으로 덧입혀 주시고, 사물의 이치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통해서 마지막 확증을 주신다고 하겠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하면서 '믿습니다'라고 해도, 실제로 여건이 조성되고, 환경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될 수 없다. 사람이 계획은 세우나, 궁극적으로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지, 그분의 인도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더욱 겸손히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실 우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장래의 모든 일들을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더 먼 장래의 일은 이미 확실히 알고 있다. 즉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우리가 그분처럼 변화되어 온전한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때로 잘못 결정하고 실수를 저지를 때가 분명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담대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댓글 3개:

익명 :

회자정리라 함은 어쩌면 동양적인, 숙명적인 냄새가 있어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죽음까지는 말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그저 열심히 살고 싶은데(Even if it's a rat race.) 주님은 나를 멈추시고 눈을 들어 주님의 다른 뜻을 보기를 원하시는것 같다.

GPCC의 변화가 교회의 흥망성쇄를 떠나서 이 공동체가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는것으로 이어지기를 믿는다.

만나고 헤여지는 결정이 주님의 뜻이냐 아니냐의 판단이 각자의 처해진 상황과 정말 무관할 수 있는가?
정말 힘든 질문이다.
나의 매일의 생활에서 나의 결정을 필요로 하는 일에 기도로 한다고 하지만 어찌 나의 기도가 나를 나의 생활여건에서 나를 자유케 하리요...

기도하고 떠나야 하고 기도하고 있어야 하는 우리는 회자정리의 수동적인 인생법칙보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깊이 묵상하여야 할것 같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매일의 생활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힘든것은 피하려는 것이 본능이지만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것인지는 정말 헤아리기 힘든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것 아닌가.

한가지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가져오는 물결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면 우리는 변화가 없는 주님과의 교제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익명 :

결단이 힘든것은 상처,희생,알지 못하는 장래에 대한 불안등이 동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때마다 결단을 요구하고 그 결단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인의 결단은 주님의 음성을 잘 들어서 이루어진다.
목사님의 결단은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한다.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설명해주시는
목사님의 떠나심은 우리에게 커다란 손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목사님이 떠나시면 누가 교회를 떠나고, 누가 지킬것인가 하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에게 던져 주시는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할것 같다.
조직으로써의 교회의 앞날에 대한 염려보다 각 공동체, 개인신앙의 점검이 중요하다.
개인의 특성이 다르듯 각기 신앙도 예외일수 없다.
공동체교인들의 변화는 피할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어느 교회를 다녔냐, 어느 공동체를 섬겼냐보다는 어디서든지 충성된 청지기의 일을 잘 감당했느냐를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davez27 :

목사님의 결정과 결단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내리신 결정이였을지, 평소 제가 알고 지내온 목사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내리신 결정도, 어떠한 이익을 위한 결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뜻을 존중하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해하고, 앞으로 목사님께서 마주하실 미래에 강건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은 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반응을 일일히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시간이 걸려서 알 수 있게될지도 모르겠고,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의견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처음엔 섭섭하더군요.
여러가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들더군요.
남들이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 또 고생하러 가시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많은 날들 동안 고민하고 걱정했을 모습과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함께 생겼습니다.

그러고는 또 다른 드는 생각이 있더군요.

내가 그동안 교회를 왜 다녔었나?

내가 왜 그 많은 교회중에 푸른목장교회를 다니게 된것인가?

어찌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별다른 질문없이 교회에 다녔다고도 보여지는군요.

하고싶은 말은 많이 있는것 같은데 별로 정리도 되지않고 복잡한 것이 사실입니다.

뜻하신 바를 꼭 이루시고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