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 시간에 그동안 다루었던 "인생의 후반전을 위한 작전타임" 강의 outline입니다.
이번 주에 남자 대 여자 종합 시험 겸 시합을 할려고 합니다.
성도님들이 보고 복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존재의가치
존재의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
1. 세상을 분별하는 (눈)
2. 사람을 평가하는 (저울질)
3. 아픔을 견디는 (옷/insulation)
4. 창의력을 충동시키는 (자신감)
5.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
사람의 의존하는 존재의 가치
1. (외모/인기)
문제: 젊음은 지나갑니다.
2. (재산)
문제: 염려가 따릅니다.
3. (명예)
문제:잊어버립니다
진정한 존재의 가치
1.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찾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2.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음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찾음
(영혼구원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존귀할 수록,
친밀할 수록,
즐거울 수록
존재의 가치는 귀하게 느껴집니다.
위로/고통의 의미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고난을 겪는다.
1) 건강 (_____)
2) 경제 (_____)
3) 건강 (_____)
4) 관계 (_____)
5) 자녀 (_____)
6) 사망 (_____)
기쁨( )만족( ) 보통( ) 염려( )원망( )분노( )우을중( )한탄( )자살 ( )
고난과 고통에 대한 잘 못된 반응들
1) 원망: 피해의식 속에 산다 / 인간관계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2) 분노: 감정 폭발에 빠진다 / 고심도치 같은 사람이 된다.
3) 거절: 방어막을 쌓은다 / 고립된 사람이 된다.
4) 도피: 현실도피, 중독에 빠진다 / 자기조절을 잃은다.
5) 절망: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거절하거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신한다.
고통의 성서적 의미
1) 죄의 직접 혹은 간접적 결과 (롬 3:10-18)
2)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 / 하나님과 친밀하여지기 위하여 (히3:15)
3) 축복의 진가를 알기 위하여 (약1:17)
4) 영원한 안식처를 사모하게 하기 위하여 (롬8:18)
안정된 삶/Security
안정된 삶 (안전)이 필요한 이유는?
1. 근심하면 만족하지 못함
2. 염려하면 건강이 무너짐
3. 당황하면 실수하기 쉬움
4. 걱정하면 감사하지 못함
5. 두려움은 우상을 섬기게 됨
*건강한 공동체의 관계가 힘들음
하나님 없이 찾는 안전한 삶
1. 환경에서
2. 소유에서
3. 현실 도피에서
*이런 것들은 불완전한 것들
참된 안정은 (안전한 삶)?
1. 하나님의 뚯 가운데 있을 데 가능함
마태복음 6:25-34
2.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빌립보서 4:6-7
3.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할 때
로마서 8:38-39
즐거움
삶의 즐거움이 사라지면
1. 심적, 육체적 병든자가 되어 짐
2. 이웃에게 기쁨을 나눠줄 것이 없음
3. 오래 참을 에너지를 상실 함
3. 하나님이 멀어짐 / 예배를 드리지 못함
삶의 즐거움이 메마르는 이유들
1. 쾌락에 대한 오해
2. 쾌락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
3. 무신론적 세계관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비결
1. 쾌락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누리게 됨 전 2:24
2. 감사하는 것 만큼 즐길 수 있음 살전 5:16-18
3. 즐거움은 이웃에게 기쁨이 되어질 때 롬12:10
4. 쾌락의 진가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 알게 됨 시편 34:8
5. 예배는 쾌락의 극치 시편 147:1
6. 쾌락의 완전 회복이 천국
참 자유
자유의 욕망
1.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2. 인간의 의지는 자유를 갈망함
자유에 대한 착각
1.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
2. 영적 현실- 무언가에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
무엇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들
(1) 분노 / 지나친 피해의식
(2) 염려 / 공포증
(3) 우을증 / 삶의 의욕 포기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1. 최고의 가치 있는 것에 최선의 순종이 자유
(My Utmost for His Highest)
우주의 법칙: 순종이 자유
하나님만이 최고의 존재
영원히 남는 것, 가장 선한 것, 가장 좋은 것
바울의 고백 빌 3:7-9
2. 사랑의 헌신이 자유
사랑과 자유의 역설적인 관계
지상 대명령은 자유의 초청 마태복음 22:37
진리
진리의 필요성
1. 빛: 현실을 들어 냄
2. 등불: 앞길을 인도 함
3. 양식: 배부르게 함
4. 검: 거짓, 무식, 착각에서 깨어나게 함
사람이 의지하는 착각(진리로)들
1. 과학: 무엇을 설명하나 왜를 모름
2. 이성 (Rationalism): 논리-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
3. 전통: 불안전한 인간의 한계
4. 종교: 입증되지 않음 –unverifiable
계시 (성경)가 모든 진리 판단의 기준
1. 계시는 논리와 관찰의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지식
2. 하나님의 지식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됨
물질 세계의 시작 과 목적
인간이 창조된 목적
인간 세계의 문제/죄
구속의 비밀
인간의 미래 /심판 아니면 영광
3. 성경은 기적과 표적으로 증명 됨
4. Most reasonable explanation of life and world.
5. Most reliable instruction on how to live
나는 무엇을 (누구를)의지할 것인가?
*목적/ 수양회 때의 강의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2009년 1월 2일 금요일
새해 인사와 더불어 소식 전합니다.
2009년 새해를 맞으면서
격동의 한해가,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경제는 물론 개인적으론 더더욱 격동이었던,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미국의 이민생활과 이민목회를 마무리하고 다시 또 한국행을 결심하고 결행하기까지 쉽지 않은 일정이 저와 제 아내를 압도했으며, 그리고 저를 목자로 알고 의지하던 푸른목장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적지 않이 당혹스러운 한해였다고 하겠습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의 초청을 수락하기로 결심하고 나자, 그 때까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아내에게 갑작스런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친가족 간에 국적을 달리하여 생활의 거처를 정해야한다는 사실로 인한 심적인 격리감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또 떳떳치 못한 부모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연유야 어쨌든 잦은 이사와 이주로 인해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생활이 벌써 13년이라, 아이들은 이제, 특별한 부르심이 아니라면, 미국의 1.5세 이민자로 사는 것이, 일생의 소명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저 자신이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또 후배들을 섬길 수 있었던 사역자의 경험과, 복음주의 학생 선교 단체 하나를 진두지휘해 보았던 경험, 그리고 이민교회이긴 하지만, 미국의 목회 경험, 이 모든 것이 다시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기여할 수 있는 밑천이 된다면 기꺼이 내놓겠다는 일념으로 이제 학복협 사역을 시작하렵니다.
연합이라는 명분은 현대사회의 실용주의 앞에서 언제든지 명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십자가의 길은 이 하나됨을 능히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도리어 이 연합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진정한 복음의 빛이 발휘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겉으로는 은혜와 겸손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성취와 높아지고자 하는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사랑의 메아리가 아니라 잡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11월 19일에 귀국하여 달포가 지나가는 연말연시가 되어서야 기본적인 가재도구며, 미국의 이삿짐 등이 다들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동안 심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신앙의 동지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친구와 친척 여러분들께, 그리고 무엇보다 푸른목장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겸하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새해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 가운데 늘 건승하시고, 온 가정과 맡으신 사역 위에 주님께서 주시는 화평과 보람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09년 신정 원단
권 영석 올림
추신: 한국의 연락처를 알려 드립니다: 02-858-9743(집); 02-838-9743(학복협 사무실); 010-7767-9743(핸드폰); 서울 관악구 신림4동 487-6 반석빌딩 6층, 학원복음화협의회 대표 (우편번호: 151-872); www.kcen.or.kr; youngseokwon@yahoo.com(그대로임).
격동의 한해가,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경제는 물론 개인적으론 더더욱 격동이었던,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미국의 이민생활과 이민목회를 마무리하고 다시 또 한국행을 결심하고 결행하기까지 쉽지 않은 일정이 저와 제 아내를 압도했으며, 그리고 저를 목자로 알고 의지하던 푸른목장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적지 않이 당혹스러운 한해였다고 하겠습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의 초청을 수락하기로 결심하고 나자, 그 때까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아내에게 갑작스런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친가족 간에 국적을 달리하여 생활의 거처를 정해야한다는 사실로 인한 심적인 격리감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또 떳떳치 못한 부모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연유야 어쨌든 잦은 이사와 이주로 인해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생활이 벌써 13년이라, 아이들은 이제, 특별한 부르심이 아니라면, 미국의 1.5세 이민자로 사는 것이, 일생의 소명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저 자신이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또 후배들을 섬길 수 있었던 사역자의 경험과, 복음주의 학생 선교 단체 하나를 진두지휘해 보았던 경험, 그리고 이민교회이긴 하지만, 미국의 목회 경험, 이 모든 것이 다시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기여할 수 있는 밑천이 된다면 기꺼이 내놓겠다는 일념으로 이제 학복협 사역을 시작하렵니다.
연합이라는 명분은 현대사회의 실용주의 앞에서 언제든지 명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십자가의 길은 이 하나됨을 능히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도리어 이 연합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진정한 복음의 빛이 발휘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겉으로는 은혜와 겸손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성취와 높아지고자 하는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사랑의 메아리가 아니라 잡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11월 19일에 귀국하여 달포가 지나가는 연말연시가 되어서야 기본적인 가재도구며, 미국의 이삿짐 등이 다들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동안 심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신앙의 동지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친구와 친척 여러분들께, 그리고 무엇보다 푸른목장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겸하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새해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 가운데 늘 건승하시고, 온 가정과 맡으신 사역 위에 주님께서 주시는 화평과 보람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09년 신정 원단
권 영석 올림
추신: 한국의 연락처를 알려 드립니다: 02-858-9743(집); 02-838-9743(학복협 사무실); 010-7767-9743(핸드폰); 서울 관악구 신림4동 487-6 반석빌딩 6층, 학원복음화협의회 대표 (우편번호: 151-872); www.kcen.or.kr; youngseokwon@yahoo.com(그대로임).
2008년 12월 26일 금요일
성탄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함께 기뻐하기 원하며 성탄절 아침 인사드립니다.
이 칙칙한 질곡의 땅에 사랑의 빛으로 오신 주님의 탄생은 여전히 온 인류의 희망이자 유일한 돌파구인 줄 압니다.
비록 인류의 문명이 가속화되고 이전 세대는 상상도하지 못했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칙칙한 색깔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만 가는 느낌입니다. 세계 도처의 기근과 전쟁과, 게다가 환경오염,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의 기상변화를 생각하면, 마치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듯한 암울함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궁핍에 궁핍을 더하고, 질곡에 질곡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곱의 인생고백처럼, 이 땅에 사는 것은,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사는 것일뿐, 연수의 자랑은 그만큼 슬픔의 세월이 길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 결코 자랑일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세상의 운명을 훤히 꿰뚫어 보셨음에도, 그리고 철저하게 배척을 받으셨음에도, 끝까지 이 세상을 부둥켜 안고, 에루살렘을 향해 눈물을 흘리셨던 우리 주님, 그분의 성육신 사랑이 온 인류의 희망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또 다른 '사소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채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오, 주님 우리의 무지와 왜곡과 편벽을 일깨우소서.
이 아침도 주님께서 이 질곡과 궁핍의 땅에 오셨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평강의 원천임을 다시금 되뇌이고 묵상하게 하소서. 나아가서 우리도 주님처럼 낮아지고 육화하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 어두운 땅에 빛으로 살게 하시고, 복음의 그 찬란한 빛 비추게 하소서.
O Come O Come Immanuel! 오 주님, 이 땅보다도 더 칙칙하고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에 이 아침도 찾아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성탄을 맞는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위에 임하시기를 빌면서,
권 영석 올림
이 칙칙한 질곡의 땅에 사랑의 빛으로 오신 주님의 탄생은 여전히 온 인류의 희망이자 유일한 돌파구인 줄 압니다.
비록 인류의 문명이 가속화되고 이전 세대는 상상도하지 못했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칙칙한 색깔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만 가는 느낌입니다. 세계 도처의 기근과 전쟁과, 게다가 환경오염,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의 기상변화를 생각하면, 마치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듯한 암울함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궁핍에 궁핍을 더하고, 질곡에 질곡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곱의 인생고백처럼, 이 땅에 사는 것은,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사는 것일뿐, 연수의 자랑은 그만큼 슬픔의 세월이 길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 결코 자랑일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세상의 운명을 훤히 꿰뚫어 보셨음에도, 그리고 철저하게 배척을 받으셨음에도, 끝까지 이 세상을 부둥켜 안고, 에루살렘을 향해 눈물을 흘리셨던 우리 주님, 그분의 성육신 사랑이 온 인류의 희망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또 다른 '사소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채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오, 주님 우리의 무지와 왜곡과 편벽을 일깨우소서.
이 아침도 주님께서 이 질곡과 궁핍의 땅에 오셨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평강의 원천임을 다시금 되뇌이고 묵상하게 하소서. 나아가서 우리도 주님처럼 낮아지고 육화하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 어두운 땅에 빛으로 살게 하시고, 복음의 그 찬란한 빛 비추게 하소서.
O Come O Come Immanuel! 오 주님, 이 땅보다도 더 칙칙하고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에 이 아침도 찾아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성탄을 맞는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위에 임하시기를 빌면서,
권 영석 올림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김홍근 선교사의 편지
Shalom. Friends.
This is Edward Kim.
I returned home to Canada now. Thanks for your prayers during the Beresheet festival.
“Love your enemies….”
Yes, this is the teaching of Yeshua. Love your enemies… However, persecutors are not always necessarily enemies. They think that they are doing right things for the Lord. Mostly, they are devoted to the Lord. They just don’t know what really truth is… It isn’t really easy to love people who threaten us, especially when they are buzzing us for 24 hours with no break. It was a great challenge to be in the festival training ourselves to learn how to love our enemies.
“We’ve killed your Jesus! He is dead!”
“Jesus is not Jewish Messiah. Don’t listen those dangerous missionaries who have killed our Jewish children in the name of Jesus!”
“Whatever you say, Yeshua loves you!” I said. Then, I heard Yad LeAchim members spat and cursed on me.
“Go to hell! Get lost!”
Anti-missionary group, Yad LeAchim, has been watching us again for 24 hours and for three days. They have been buzzing us all the time during the Beresheet festival. This year, they brought an official authority to push us away. They brought director of regional council, and their attorney. They brought policemen. They didn’t care what others are doing— drug, alcohol for kids, false teaching to children. However, they did really care what we were doing there—Sharing true life with Yeshua.
They have chasing me, cursed on me, and spat on me. “You are a dirty missionary! You are selling our Jewish souls!” Well… nothing has been changed since Yeshua crucified on the cross two thousand years ago. In the morning during our team devotion time, I told to team members not to argue with them, but to love them because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They think that they are really protecting their own Jewish people from “dangerous missionaries” because that is how they have been educated.
However, God haven’t stop working there. It was the only teashop outside of festival. Many people didn’t buy ticket to the festival! They camped near our teashop! Every night there were full of people in the out teashop! We had our worship teams that run stage day and night! We also had movie time with JESUS film every night! We have put full volume of sound so that all people in the camping site can hear the gospel. I saw many secular people joined to our worship to the Lord. The name of the Yeshua has been declared there. Several teens have been healed during our prayer. Several others have prayed to accept Yeshua as their Messiah. We do not have yet exact number of people who prayed to accept Yeshua. I will let you know when I get it after our debriefing meeting of our staffs.
God has used us in the festival to be witness of God’s love, and healed many broken hearts. There were a dozen of commando soldiers by our teashop, who took a short vacation. They have tried to escape from their stress by yelling and making fun of people around them. They have gone through really tough time in the army. Many of them have lost their friends in combats. They have tried to forget every pain just by drinking and making fun of people. They have overtaken out teashop from the morning, and yelling to people coming to the teashop. My heart was really boiling inside, but invited them for breakfast instead of kicking them away. While they were eating, our staff members have shared them Gospel. Then, they enjoyed being with us for the last days of the festival. They even tried protect us from Yad LeAchim.
Thanks for your prayer. I’m glad to be with my family. It was a challenging time for my wife to be by herself. God has blessed us.
Keep praying for us to return to home in Israel someday. Keep praying for raising our Share support during our HMA. We need to raise around $2000 this year.
Blessings.
Ed
PS: See pictures from Berehseet:
http://gallery.me.com/beityeshua#100135
This is Edward Kim.
I returned home to Canada now. Thanks for your prayers during the Beresheet festival.
“Love your enemies….”
Yes, this is the teaching of Yeshua. Love your enemies… However, persecutors are not always necessarily enemies. They think that they are doing right things for the Lord. Mostly, they are devoted to the Lord. They just don’t know what really truth is… It isn’t really easy to love people who threaten us, especially when they are buzzing us for 24 hours with no break. It was a great challenge to be in the festival training ourselves to learn how to love our enemies.
“We’ve killed your Jesus! He is dead!”
“Jesus is not Jewish Messiah. Don’t listen those dangerous missionaries who have killed our Jewish children in the name of Jesus!”
“Whatever you say, Yeshua loves you!” I said. Then, I heard Yad LeAchim members spat and cursed on me.
“Go to hell! Get lost!”
Anti-missionary group, Yad LeAchim, has been watching us again for 24 hours and for three days. They have been buzzing us all the time during the Beresheet festival. This year, they brought an official authority to push us away. They brought director of regional council, and their attorney. They brought policemen. They didn’t care what others are doing— drug, alcohol for kids, false teaching to children. However, they did really care what we were doing there—Sharing true life with Yeshua.
They have chasing me, cursed on me, and spat on me. “You are a dirty missionary! You are selling our Jewish souls!” Well… nothing has been changed since Yeshua crucified on the cross two thousand years ago. In the morning during our team devotion time, I told to team members not to argue with them, but to love them because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They think that they are really protecting their own Jewish people from “dangerous missionaries” because that is how they have been educated.
However, God haven’t stop working there. It was the only teashop outside of festival. Many people didn’t buy ticket to the festival! They camped near our teashop! Every night there were full of people in the out teashop! We had our worship teams that run stage day and night! We also had movie time with JESUS film every night! We have put full volume of sound so that all people in the camping site can hear the gospel. I saw many secular people joined to our worship to the Lord. The name of the Yeshua has been declared there. Several teens have been healed during our prayer. Several others have prayed to accept Yeshua as their Messiah. We do not have yet exact number of people who prayed to accept Yeshua. I will let you know when I get it after our debriefing meeting of our staffs.
God has used us in the festival to be witness of God’s love, and healed many broken hearts. There were a dozen of commando soldiers by our teashop, who took a short vacation. They have tried to escape from their stress by yelling and making fun of people around them. They have gone through really tough time in the army. Many of them have lost their friends in combats. They have tried to forget every pain just by drinking and making fun of people. They have overtaken out teashop from the morning, and yelling to people coming to the teashop. My heart was really boiling inside, but invited them for breakfast instead of kicking them away. While they were eating, our staff members have shared them Gospel. Then, they enjoyed being with us for the last days of the festival. They even tried protect us from Yad LeAchim.
Thanks for your prayer. I’m glad to be with my family. It was a challenging time for my wife to be by herself. God has blessed us.
Keep praying for us to return to home in Israel someday. Keep praying for raising our Share support during our HMA. We need to raise around $2000 this year.
Blessings.
Ed
PS: See pictures from Berehseet:
http://gallery.me.com/beityeshua#100135
2008년 9월 27일 토요일
권영석 목사 근황
사랑하는 교우님들에게,
그동안 적조하여서 송구합니다. 그간도 주님 안에서 여상하시겠지요? 주님의 크신 은혜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고 놀랍기만 합니다.
다 름 아니라, 저는 그동안 정들었던 ‘푸른 목장 교회’(L.A. 북쪽의 밸리 지역의 교민교회)를 사임하고, 한국의 ‘학원복음화협의회’ 사역을 위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학복협은 지난 20여 년간 국내의 대학생 선교 단체들과 지역교회의 대학부들을 아우르는 매개역할을 해 온 일종의 연합체 성격의 협력단체인데, 상임대표로 수고하시던 이승장 목사님께서 은퇴하신 후 후임자를 물색하던 중 제게 요청이 오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선교단체와 지역교회 둘 다를 봉사했던 저의 경험이 학복협 사역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이 민교회의 열악한 상황을 가까이서 보고 겪은 저로서 선뜻 고국행을 결정할 수 없어서 수개월 동안 갈등과 기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시면, 어디든지 가야하는 것이 종의 소임인 만큼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아직 교회의 후임 목회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임하게 되어 한편 부담이 됩니다만, 주님께서 이 곳 교회도 친히 돌보시리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리더십(실행위원회와 청빙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한 국에 부칠 짐들을 싸고, 이곳의 집을 줄여서 딸 아이(오은)의 학교 인근의 아파트로 옮기는 작업을 막 마쳤습니다.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헤어져서 지내야 하는 문제, 한국에 들어가서 새로이 거처를 마련하는 문제, 더욱이 그간의 변모한 한국 상황을 따라잡는 일 등 쉽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주님께서 한걸음씩 인도하시리라 믿고, 모험의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 모든 전환의 과정에서부터 주님과 동행하며, 잘 감당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귀국한 후에 다시 알려드리기로 하고, 우선 저희의 미국내 연락처(전화/주소)가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정보인 주소와 전화번호는 이곳에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메일로 직접 받아보신 분들도 많이 있으시고 해서 그리하였습니다. 따로 권목사님의 연락처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omdchung@gmail.com)
그동안 적조하여서 송구합니다. 그간도 주님 안에서 여상하시겠지요? 주님의 크신 은혜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고 놀랍기만 합니다.
다 름 아니라, 저는 그동안 정들었던 ‘푸른 목장 교회’(L.A. 북쪽의 밸리 지역의 교민교회)를 사임하고, 한국의 ‘학원복음화협의회’ 사역을 위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학복협은 지난 20여 년간 국내의 대학생 선교 단체들과 지역교회의 대학부들을 아우르는 매개역할을 해 온 일종의 연합체 성격의 협력단체인데, 상임대표로 수고하시던 이승장 목사님께서 은퇴하신 후 후임자를 물색하던 중 제게 요청이 오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선교단체와 지역교회 둘 다를 봉사했던 저의 경험이 학복협 사역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이 민교회의 열악한 상황을 가까이서 보고 겪은 저로서 선뜻 고국행을 결정할 수 없어서 수개월 동안 갈등과 기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시면, 어디든지 가야하는 것이 종의 소임인 만큼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아직 교회의 후임 목회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임하게 되어 한편 부담이 됩니다만, 주님께서 이 곳 교회도 친히 돌보시리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리더십(실행위원회와 청빙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한 국에 부칠 짐들을 싸고, 이곳의 집을 줄여서 딸 아이(오은)의 학교 인근의 아파트로 옮기는 작업을 막 마쳤습니다.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헤어져서 지내야 하는 문제, 한국에 들어가서 새로이 거처를 마련하는 문제, 더욱이 그간의 변모한 한국 상황을 따라잡는 일 등 쉽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주님께서 한걸음씩 인도하시리라 믿고, 모험의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 모든 전환의 과정에서부터 주님과 동행하며, 잘 감당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귀국한 후에 다시 알려드리기로 하고, 우선 저희의 미국내 연락처(전화/주소)가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정보인 주소와 전화번호는 이곳에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메일로 직접 받아보신 분들도 많이 있으시고 해서 그리하였습니다. 따로 권목사님의 연락처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omdchung@gmail.com)
2008년 9월 8일 월요일
설교 본문 : 행 18:1~11
1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2008년 9월 5일 금요일
목회 칼럼: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푸른 목장 교회에 청빙 요청을 수락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감사기도를 드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또 작별을 고하게 되고 보니, 참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럽기도 하고 또 아쉽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떠나는 사람은 유구무언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지만, 칼럼란을 빌어서 몇 가지 회한을 정리함으로 작별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저와 저희 가족을 한 식구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밸리와는 별 인연이 없던 저희였지만, 더운 날씨와 기괴한 바람소리가 이제 그리 낯설지 않게 된 데는 여러분의 우정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인 줄 압니다. 부모님처럼 따뜻이 대해주시던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허물없게 대해 주시던 형님들과 누님들, 순박하고 순수하던 또래의 집사님들, 동생같고 조카 같이 따르고 존경해 주던 손아래 형제 자매들... 제가 베푼 것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허나 돌이켜보면, 제 자신이 전형적인 이민자로 이 땅을 밟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민자의 애환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고 하는 태생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저의 가르침과 목회활동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원론적이었으며, 여러분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제 가슴 한 구석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제 생각은, 지금도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굳게 믿지만, 대다수의 교우들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이요 꿈같은 얘기로 들리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마는, 하나님께서는 지난 3년 세월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제게나 여러분에게나,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이신지, 그리고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는지,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마땅히 어떤 모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으매,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비록 당장 가시적인 변화로 드러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도전해 주셨던 바를 꼬옥 붙드시고, 또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들어 순종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 개인에게나 우리 교회 위에 지혜를 주시고, 더욱 새롭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여, 예상치 않았던 갑작스런 부르심으로 정들었던 교회와 교우들을 생이별하게 된 이 송구스러운 일이, (여러분에게도 황당스러웠겠습니다만, 제 자신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간구하렵니다.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곧 전환기 이민 사회의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훌륭한 목자를 새로이 보내 주시고 세워주셔서 그 동안 부족했던 일들을 보완하여 주심으로 우리 푸른 목장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고 밸리지역 일원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 참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해 주실 줄로 믿고 모든 것을 교회의 머리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하신 손에 의탁하렵니다. 아울러서 저와 저희 가족들을 또 요긴하게 사용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좇아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귀중한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저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언제일는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은 소중히 간직해 주시고, 섭섭하고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 털어 내어 주십시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2008년 8월 31일 권영석 올림.
무엇보다도, 그 동안 저와 저희 가족을 한 식구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밸리와는 별 인연이 없던 저희였지만, 더운 날씨와 기괴한 바람소리가 이제 그리 낯설지 않게 된 데는 여러분의 우정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인 줄 압니다. 부모님처럼 따뜻이 대해주시던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허물없게 대해 주시던 형님들과 누님들, 순박하고 순수하던 또래의 집사님들, 동생같고 조카 같이 따르고 존경해 주던 손아래 형제 자매들... 제가 베푼 것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허나 돌이켜보면, 제 자신이 전형적인 이민자로 이 땅을 밟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민자의 애환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고 하는 태생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저의 가르침과 목회활동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원론적이었으며, 여러분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제 가슴 한 구석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제 생각은, 지금도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굳게 믿지만, 대다수의 교우들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이요 꿈같은 얘기로 들리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마는, 하나님께서는 지난 3년 세월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제게나 여러분에게나,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이신지, 그리고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는지,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마땅히 어떤 모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으매,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비록 당장 가시적인 변화로 드러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도전해 주셨던 바를 꼬옥 붙드시고, 또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들어 순종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 개인에게나 우리 교회 위에 지혜를 주시고, 더욱 새롭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여, 예상치 않았던 갑작스런 부르심으로 정들었던 교회와 교우들을 생이별하게 된 이 송구스러운 일이, (여러분에게도 황당스러웠겠습니다만, 제 자신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간구하렵니다.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곧 전환기 이민 사회의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훌륭한 목자를 새로이 보내 주시고 세워주셔서 그 동안 부족했던 일들을 보완하여 주심으로 우리 푸른 목장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고 밸리지역 일원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 참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해 주실 줄로 믿고 모든 것을 교회의 머리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하신 손에 의탁하렵니다. 아울러서 저와 저희 가족들을 또 요긴하게 사용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좇아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귀중한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저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언제일는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은 소중히 간직해 주시고, 섭섭하고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 털어 내어 주십시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2008년 8월 31일 권영석 올림.
설교 본문 연구: 십자가에 못 박힌 믿음의 선배 바울
(고후 11:16-12:10/ 구체적인 case: 고전 9:1-27/행 20:33-35)
1. 바울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무엇을 일컫는가? (11:16-17)
2. 이 세상은, 고린도 교인들처럼 “어리석은 자들”, 곧 스스로 자랑하는 자들을 도리어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그리스도인(‘주를 따라 자랑하는 자’) 들의 본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랑을 늘어놓으려 하는(11:21- 12:1) 까닭은 무엇일까?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11:23, 참조: 10:10)
3. 바울은 안팎으로 고난을 당했다. 내적으로 받은 바울의 스트레스는 무엇 때문인가?(11:28) 이는 결국 고린도 교회에 속한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겠는가?(11:29)
4.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의 대표적인 예로써 다메섹 탈출 경험(11:32-33)을 언급한다. 이것이 어떻게 바울의 약함을 드러내어 주는 예가 될까?
5. 12:1-4의 경험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다. 그런데, 왜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6. 바울은 왜 이런 압도적인 체험을 배제하고 도리어 자신의 가시로 말미암는 연약함을 부각시키려 애쓰는가?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보자.(12:6, 9- 10)
7. 그리스도의 제자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사람이다(참조: 13:4).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또 우리가 처한 일상에서 어떻게 바울의 기본원리(12:10b)를 살아낼 수 있을까?
다음 주 말씀: 작별의 슬픔과 소망 (행 20:17-38)
1. 바울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무엇을 일컫는가? (11:16-17)
2. 이 세상은, 고린도 교인들처럼 “어리석은 자들”, 곧 스스로 자랑하는 자들을 도리어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그리스도인(‘주를 따라 자랑하는 자’) 들의 본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랑을 늘어놓으려 하는(11:21- 12:1) 까닭은 무엇일까?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11:23, 참조: 10:10)
3. 바울은 안팎으로 고난을 당했다. 내적으로 받은 바울의 스트레스는 무엇 때문인가?(11:28) 이는 결국 고린도 교회에 속한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겠는가?(11:29)
4.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의 대표적인 예로써 다메섹 탈출 경험(11:32-33)을 언급한다. 이것이 어떻게 바울의 약함을 드러내어 주는 예가 될까?
5. 12:1-4의 경험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다. 그런데, 왜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6. 바울은 왜 이런 압도적인 체험을 배제하고 도리어 자신의 가시로 말미암는 연약함을 부각시키려 애쓰는가?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보자.(12:6, 9- 10)
7. 그리스도의 제자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사람이다(참조: 13:4).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또 우리가 처한 일상에서 어떻게 바울의 기본원리(12:10b)를 살아낼 수 있을까?
다음 주 말씀: 작별의 슬픔과 소망 (행 20:17-38)
목회칼럼 : 자기 부인-세상의 연줄을 끊어버려라!
인생은 어딘가/누군가에 소속하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이다.
그러나 절대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보일지라도, 기껏해야 상대적인 존재 곧 또-다른 “불안한 존재”에 우리의 소속/충성을 맡기고 살아야 하는 풍전등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전설적인 영웅이나,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지도자라 해도, 결국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생일 뿐이며, 우리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해 줄 것처럼 보이는 소유/돈이나, 권세/빽, 인기 등과 같은
이 세상의 파우어도 궁극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은 못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적인 파우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든 그 세를 불려야 하고, 연루된 사람들을 실타래처럼 더 많이 규합해 나가야 한다. 이런 세 싸움에서 손쉽게 힘을 규합할 수 있는 방법이 소위 연줄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강부자나 고소영 같은 학연, 지연, 혈연, 교연 등의 “연줄”은 피차간의 필요가 맞물려 있는 동안은 강력한 본드로 작용할지 모르지만, 어느 한 쪽에서 필요의 수명이 다하면, 그야말로 줄 떨어진 연처럼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서 피차가 소외되고 만다. 그래서 이 연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폭력을 휘둘러서 상대를 굴복시키려 들거나(violence), 그 폭력을 피해가기 위해 조종/기만(manipulation) 함으로써 관계를 팽팽히 긴장시켜야 한다.
세상은 이것을 훌륭한 ‘매니지먼트’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런 식의 매니지먼트는 본질에 대한 관심은 제쳐두고, 끊임없는 야합과 이합집산의 이전투구를 반복하도록 할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니라, 이런 식의 연줄을 끊어버리고, 이 세상적인 매니지먼트를 중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참되신 하나님께 소속하게 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이런 위협과 조종의 방식을 좇을 필요가 없다. 도리어 뭇사람(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누구든지, 심지어 원수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 인격의 바운데리를 지켜주며, 나아가서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 불쌍히 여겨서 헤아려 주고, 용납해 주고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
사실 하늘 나라의 막강한 파우어를 모두 지니신 우리 주님께서 하늘 나라의 모든 연줄을 끊어버리고 철저히 낮아지심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도리어 전혀 파우어 형성에 도움이 안되는 죄인/세리/창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지 않으셨던가! 아마도 주님께서 자신의 힘을 더욱 굳히고 과시하시기 위해 연줄을 규합하고자 하셨던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언감생심 그분의 측근 그룹에 접근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 부인이란, 이처럼 이 세상적인 안전과 파우어의 연줄을 끊어버리고, 도리어 이 세상을 “피하여”(counter-walk: 역행하여) 우리 주님의 모범을 좇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vulnerable)한만큼, 주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시며 챙겨주실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보일지라도, 기껏해야 상대적인 존재 곧 또-다른 “불안한 존재”에 우리의 소속/충성을 맡기고 살아야 하는 풍전등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전설적인 영웅이나,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지도자라 해도, 결국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생일 뿐이며, 우리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해 줄 것처럼 보이는 소유/돈이나, 권세/빽, 인기 등과 같은
이 세상의 파우어도 궁극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은 못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적인 파우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든 그 세를 불려야 하고, 연루된 사람들을 실타래처럼 더 많이 규합해 나가야 한다. 이런 세 싸움에서 손쉽게 힘을 규합할 수 있는 방법이 소위 연줄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강부자나 고소영 같은 학연, 지연, 혈연, 교연 등의 “연줄”은 피차간의 필요가 맞물려 있는 동안은 강력한 본드로 작용할지 모르지만, 어느 한 쪽에서 필요의 수명이 다하면, 그야말로 줄 떨어진 연처럼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서 피차가 소외되고 만다. 그래서 이 연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폭력을 휘둘러서 상대를 굴복시키려 들거나(violence), 그 폭력을 피해가기 위해 조종/기만(manipulation) 함으로써 관계를 팽팽히 긴장시켜야 한다.
세상은 이것을 훌륭한 ‘매니지먼트’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런 식의 매니지먼트는 본질에 대한 관심은 제쳐두고, 끊임없는 야합과 이합집산의 이전투구를 반복하도록 할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니라, 이런 식의 연줄을 끊어버리고, 이 세상적인 매니지먼트를 중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참되신 하나님께 소속하게 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이런 위협과 조종의 방식을 좇을 필요가 없다. 도리어 뭇사람(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누구든지, 심지어 원수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 인격의 바운데리를 지켜주며, 나아가서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 불쌍히 여겨서 헤아려 주고, 용납해 주고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
사실 하늘 나라의 막강한 파우어를 모두 지니신 우리 주님께서 하늘 나라의 모든 연줄을 끊어버리고 철저히 낮아지심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도리어 전혀 파우어 형성에 도움이 안되는 죄인/세리/창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지 않으셨던가! 아마도 주님께서 자신의 힘을 더욱 굳히고 과시하시기 위해 연줄을 규합하고자 하셨던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언감생심 그분의 측근 그룹에 접근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 부인이란, 이처럼 이 세상적인 안전과 파우어의 연줄을 끊어버리고, 도리어 이 세상을 “피하여”(counter-walk: 역행하여) 우리 주님의 모범을 좇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vulnerable)한만큼, 주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시며 챙겨주실 것이다.
퍼뮤니케이션
친구에게 (2)
여보쇼 친구여, 수고가 크구려.
부모형제 떼어놓고,
자식 위해 교육 위해,
낯선 땅을 찾아왔는데,
지나온 길 돌아보오.
어른 말씀 순종하는
아들 하나 키워놨는가?
부모 마음 알아주는
딸내미나 하나 있는가?
이웃과 사회 위해 나누고 희생을 할 인물이오
나라와 민족 위해 달려나가 줄 인물이오.
허허 어쩌나,
낳은 자식은 있는데 키워 놓은 자식은 없을까 하오.
하늘 위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수많은 자손 위에 우리가 해가 되어 준다면,
밤의 별처럼 한낮의 모래처럼 반짝이고 빛내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까 하오.
(신호범, 기윤실 특강 중에서)
여보쇼 친구여, 수고가 크구려.
부모형제 떼어놓고,
자식 위해 교육 위해,
낯선 땅을 찾아왔는데,
지나온 길 돌아보오.
어른 말씀 순종하는
아들 하나 키워놨는가?
부모 마음 알아주는
딸내미나 하나 있는가?
이웃과 사회 위해 나누고 희생을 할 인물이오
나라와 민족 위해 달려나가 줄 인물이오.
허허 어쩌나,
낳은 자식은 있는데 키워 놓은 자식은 없을까 하오.
하늘 위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수많은 자손 위에 우리가 해가 되어 준다면,
밤의 별처럼 한낮의 모래처럼 반짝이고 빛내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까 하오.
(신호범, 기윤실 특강 중에서)
2008년 8월 21일 목요일
퍼뮤니케이션: 아는 놈/ 친구에게(1)
“아는 놈야?”
“모르는 놈인데?”
턱끝으로 가리키며 그들은 그렇게 주고 받고 있었다.
부평역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겨울인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그들은
나는 그들한테도
모르는 놈이다. (김연승,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친구에게 (1),
여보쇼 친구여, 고생이 많구려.
밤도 낮도, 허리 펼 새도 없이 일하고 돈 벌었는데,
허리 펴고 한 번 돌아보오.
앞집 코큰 아저씨와 악수나 한번 나눠봤는지
뒷집 뚱보 아줌마랑 통성명이나 하였는지?
언덕 위의 저택에서 가라오케 파티 열고
캐딜락 스피커에선 흘러간 옛 노래 흥겨운데,
허허 이러다간 끼리끼리 한민족
꼴불견의 한 민족 될까 하오.
타국 땅 비치는 외로운 저 달은
어릴 적 고향 초가 위의 그 달이 분명한데,
이 땅도 내 땅 삼고, 타민족도 내 이웃 삼아,
가꾸고 사랑함이 어떨까 하오. (신호범, 기윤실 강의 중)
“모르는 놈인데?”
턱끝으로 가리키며 그들은 그렇게 주고 받고 있었다.
부평역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겨울인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그들은
나는 그들한테도
모르는 놈이다. (김연승,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친구에게 (1),
여보쇼 친구여, 고생이 많구려.
밤도 낮도, 허리 펼 새도 없이 일하고 돈 벌었는데,
허리 펴고 한 번 돌아보오.
앞집 코큰 아저씨와 악수나 한번 나눠봤는지
뒷집 뚱보 아줌마랑 통성명이나 하였는지?
언덕 위의 저택에서 가라오케 파티 열고
캐딜락 스피커에선 흘러간 옛 노래 흥겨운데,
허허 이러다간 끼리끼리 한민족
꼴불견의 한 민족 될까 하오.
타국 땅 비치는 외로운 저 달은
어릴 적 고향 초가 위의 그 달이 분명한데,
이 땅도 내 땅 삼고, 타민족도 내 이웃 삼아,
가꾸고 사랑함이 어떨까 하오. (신호범, 기윤실 강의 중)
목회칼럼 : 우리의 일상 속에 오신 주님의 은총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백성으로 구별된 것은 우리가 특별해짐으로써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 속에 오심으로써 된 것이다. 즉 우리가 특별히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도, 우리가 특별히 거룩해졌기 때문에 된 것도 아니다. 오직, 거룩하신 그분께서 거룩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 속에 오셨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우리 스스로 이런 koine(보통, 속된, 더러운, 쌍<常>스러운) 상태를 벗어날/초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오,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이런 코이네 상태로 낮아지심으로, 도리어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분과 동행하는 가운데 거룩하게 변하게 해 주신 은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요, 이런 사랑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도(백성)들이다. 이 은혜 안에서 우리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 모든 구석구석이 이제는 새로워졌고 의미있는 것으로 변화되게 되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매일 같이 대하던 밥 한 공기, 어김없이 찾아오는 출근 시간이 새로운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께 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소유하셨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일상의 모든 시공간에 오셔서 우리의 일상을 ‘거룩’케 하시는 그분과 기쁘게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상을 제쳐두고 무슨 신령한 체험이나 의식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거룩케 하려던 이전의 발상과 lifestyle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의 새로운 position/identity와 그에 걸맞은 lifestyle로 사는 걸음마를 연습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의미없이 또는 도리어 허황하고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허우적대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identity로 사는 하나님 나라의 lifestyle을 익혀 나가야 한다.
아침에 단잠에서 깨어나서, 커피한잔과 함께 하루를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모든 만남과 관계들, 직장의 반복되는 일과와, 식구들과 둘러앉아서 서로 서로 감사하며 축하하는 저녁 만찬, 그리고 하루의 창을 닫는 고요한 저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분과 동행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미로 가득하고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거룩한 일상이 되게 된 것을 실제로 경험(actualize)해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기부인의 삶은, 분명 이처럼 이전의 경건치 않은 세상의 정욕을 향해 “안돼”라고 말하는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는 도리어 우리의 허무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하여, 주님 안에서 다시 지음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의 모든 일상을 보람있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신나고 신비스러운 여정을 의미한다.
Always thank God and be satisfied in Christ Jesus our Lord.
만일 우리가 아직도 우리 스스로 이런 koine(보통, 속된, 더러운, 쌍<常>스러운) 상태를 벗어날/초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오,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이런 코이네 상태로 낮아지심으로, 도리어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분과 동행하는 가운데 거룩하게 변하게 해 주신 은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요, 이런 사랑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도(백성)들이다. 이 은혜 안에서 우리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 모든 구석구석이 이제는 새로워졌고 의미있는 것으로 변화되게 되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매일 같이 대하던 밥 한 공기, 어김없이 찾아오는 출근 시간이 새로운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께 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소유하셨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일상의 모든 시공간에 오셔서 우리의 일상을 ‘거룩’케 하시는 그분과 기쁘게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상을 제쳐두고 무슨 신령한 체험이나 의식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거룩케 하려던 이전의 발상과 lifestyle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의 새로운 position/identity와 그에 걸맞은 lifestyle로 사는 걸음마를 연습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의미없이 또는 도리어 허황하고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허우적대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identity로 사는 하나님 나라의 lifestyle을 익혀 나가야 한다.
아침에 단잠에서 깨어나서, 커피한잔과 함께 하루를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모든 만남과 관계들, 직장의 반복되는 일과와, 식구들과 둘러앉아서 서로 서로 감사하며 축하하는 저녁 만찬, 그리고 하루의 창을 닫는 고요한 저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분과 동행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미로 가득하고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거룩한 일상이 되게 된 것을 실제로 경험(actualize)해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기부인의 삶은, 분명 이처럼 이전의 경건치 않은 세상의 정욕을 향해 “안돼”라고 말하는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는 도리어 우리의 허무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하여, 주님 안에서 다시 지음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의 모든 일상을 보람있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신나고 신비스러운 여정을 의미한다.
Always thank God and be satisfied in Christ Jesus our Lord.
설교 본문 연구: 이웃 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눅 10:25-37)
1. 율법사가 예수께 와서 질문한 의도/동기는?(25절) 이 질문이 어째서 예수를 시험하는 것이 될 수 있었을까?
2. 예수께서 어떻게 이 질문의 공을 다시 율법사에 넘기시는가?(26절)
3. 율법사가 율법에서 읽은 내용에 기초해서 제시한 대답은?(27절)
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27절)
5. 예수께서 칭찬하시면서 '그대로 행하라'고 하자, 율법사는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29절). 이 두 번째 질문의 저의는 무엇일까?(29절)
6. 이 질문에 대답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다. 이 비유의 요점은 무엇일까?(36-37상절)
7.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하여 지나간 것과 사마리아인이 최선을 다해서 돌보아 준 것을 대조해 볼 때, 그 차이는 결국 어디서 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까?(31-35절) (참고: 당시 가난한 사람이 기본 숙식을 해결하는데 하루 1/12 데나리온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2 데나리온은 24일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었다.)
8.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은 어떤 교훈을 받았을까? 특히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음을 고려해 보라. (참고: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버금가는 금기사항이었다.)
9. 비유 속의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런 선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웃으로서 곤궁에 처한 이웃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대로 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영생을 이미 얻은 우리는 더더욱 '이웃'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다음 주 말씀: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산 믿음의 선배 바울
(고후 11:16-12:10/ 고전 9:1-27/ 행 20:33-35)
1. 율법사가 예수께 와서 질문한 의도/동기는?(25절) 이 질문이 어째서 예수를 시험하는 것이 될 수 있었을까?
2. 예수께서 어떻게 이 질문의 공을 다시 율법사에 넘기시는가?(26절)
3. 율법사가 율법에서 읽은 내용에 기초해서 제시한 대답은?(27절)
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27절)
5. 예수께서 칭찬하시면서 '그대로 행하라'고 하자, 율법사는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29절). 이 두 번째 질문의 저의는 무엇일까?(29절)
6. 이 질문에 대답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다. 이 비유의 요점은 무엇일까?(36-37상절)
7.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하여 지나간 것과 사마리아인이 최선을 다해서 돌보아 준 것을 대조해 볼 때, 그 차이는 결국 어디서 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까?(31-35절) (참고: 당시 가난한 사람이 기본 숙식을 해결하는데 하루 1/12 데나리온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2 데나리온은 24일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었다.)
8.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은 어떤 교훈을 받았을까? 특히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음을 고려해 보라. (참고: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버금가는 금기사항이었다.)
9. 비유 속의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런 선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웃으로서 곤궁에 처한 이웃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대로 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영생을 이미 얻은 우리는 더더욱 '이웃'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다음 주 말씀: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산 믿음의 선배 바울
(고후 11:16-12:10/ 고전 9:1-27/ 행 20:33-35)
2008년 8월 11일 월요일
설교 본문 연구: 신령한 것과 일상적인 것의 잘못된 구분(막 7:1-23)
1. 예수께 접근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내려 온 사람들인가? (1절)
2. 그들이 제기한 문제,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은 것(2, 5절)이 뭬 그리 문제인가? (3-4절)
3. 이들을 향해, 예수께서 다짜고짜 인용한 예언서의 내용은? (6-7절)
4. 이에 비추어 볼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9절, 특히 6절의 "교훈을 삼아"에 주목하라.)
5. 예수께서 그 근거로 더 제시하신, 시범적인 사례로 제시한 예는? (11-13절)
6. "정결예법"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한 마디로 요약해 보라. (15-16절)
7.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 이 원리를 한 단계 더 비약적으로 적용하시고 있는 내용은? (18-19절, 특히 19절 하반절; 참조: 행 10:14-15, 28, 11:8-9, 21:28, 롬 14:14, 히 9:13, 10:29)
8. 20-23절에서 예수께서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제는 안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을 말씀하신다. 그 목록의 내용을 열거해 보라.
9. 이런 [고의적인] 악한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바리새인들의 유전이 이런 악한 생각들을 바로잡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무엇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까?
다음 주 말씀: 이웃 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눅 10:25-37)
2. 그들이 제기한 문제,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은 것(2, 5절)이 뭬 그리 문제인가? (3-4절)
3. 이들을 향해, 예수께서 다짜고짜 인용한 예언서의 내용은? (6-7절)
4. 이에 비추어 볼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9절, 특히 6절의 "교훈을 삼아"에 주목하라.)
5. 예수께서 그 근거로 더 제시하신, 시범적인 사례로 제시한 예는? (11-13절)
6. "정결예법"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한 마디로 요약해 보라. (15-16절)
7.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 이 원리를 한 단계 더 비약적으로 적용하시고 있는 내용은? (18-19절, 특히 19절 하반절; 참조: 행 10:14-15, 28, 11:8-9, 21:28, 롬 14:14, 히 9:13, 10:29)
8. 20-23절에서 예수께서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제는 안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을 말씀하신다. 그 목록의 내용을 열거해 보라.
9. 이런 [고의적인] 악한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바리새인들의 유전이 이런 악한 생각들을 바로잡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무엇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까?
다음 주 말씀: 이웃 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눅 10:25-37)
선교지 소식: 작은 불꽃 소식
"Be a Timothy, Make a Timothy!"
이 캐치 프레이즈는 8.11-15 우크라이나의 흑해 해변 니콜라이에서 실시하는 우크라이나 디모데 아카데미 08년 여름 훈련의 주제입니다. '디모데가 되고, 디모데를 만들자'는 우리 선교회가 중앙 아메리카 3개국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배출하는 사역의 캐치 프레이즈이며 동구라파의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장차 중앙 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 언어권의 제자화 사역을 향한 대망의 도전입니다.
이번 5일간의 실전사역은 지금까지 훈련시킨 초급 제자들에게 실전을 경험시켜, 배운 바 말씀이 성령께서 인간구원을 위해 사역하시는 생명 그 자체이며, 훈련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오늘도 강력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역을 통해 5-10명의 초급 장교급 지도자들이 부상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가 인원은 70명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일인당 미화 100불 예산을 세웠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방된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자유롭게 돈을 벌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훈련장에 오는 장거리 열차 비용과 5일간의 숙식과 장소 대여비 모두를 계산하여 현지에서 1인당 100불로 계산한 것입니다. 훈련을 위해서는, 훈련생이 있어야 하고, 전문적인 훈련자가 있어야 하며, 소요 경비가 조달되어야 하고, 훈련에 필요한 좋은 자료를 준비하고, 전체적인 진행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재능를 가진 경험있는 스태프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의 우리 훈련은 항상 "기적" 가운데 공급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우크라이나입니까? 제 자신은 오랜 동안 이 질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바드의 역사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오래 전에 쓴 '문명의 충돌'에서,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것이 바로 여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를 가르면서 흐르는 아름다운 드네프레 강이라고 하면서, 그곳을 무시무시한 동서 문명의 충돌 지점이라는 씨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러시아의 총리 푸틴은 만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충동질하여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동과 서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주님의 제자 안드레가 핍박을 피해 복음을 전한 곳, 815-885년 사이에 콘스탄틴 성을 가진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의 슬라브어 문자화와 선교 사역, 999년 이해 블라디미르로 인한 러시아 정교회국가로 부상하게 된 오랜 동안의 기독교 문화, 서방 카톨릭과 동방 교회간의 미묘한 관계는 비록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러시아 정교회의 원조국이지만 아직도 그 유산이 보존되도록 해 왔던 민족, 한국 민족처럼 스탈린 시대 전부터 전 세계에 해외 국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가슴에 눈물진 한을 갖고 사는 민족, 한국 전쟁 때는 젊은이들이 쏘련군으로 와서 목숨을 버리고 간 민족, 인구 4700만의 이 긴 기독교 역사의 명목상의 기독교 국가로 변해 버린 나라..., 다만 뭔가 하나님의 뜻이 계신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장차 선교사를 많이 배출하여 러시아어권과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많이 (마치 한국 교회처럼) 보낼 나라인 것만은 보입니다. 이 일에 우리를 사용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놀랍습니까? 계속하여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십시오. (이순정 목사 올림)
이 캐치 프레이즈는 8.11-15 우크라이나의 흑해 해변 니콜라이에서 실시하는 우크라이나 디모데 아카데미 08년 여름 훈련의 주제입니다. '디모데가 되고, 디모데를 만들자'는 우리 선교회가 중앙 아메리카 3개국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배출하는 사역의 캐치 프레이즈이며 동구라파의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장차 중앙 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 언어권의 제자화 사역을 향한 대망의 도전입니다.
이번 5일간의 실전사역은 지금까지 훈련시킨 초급 제자들에게 실전을 경험시켜, 배운 바 말씀이 성령께서 인간구원을 위해 사역하시는 생명 그 자체이며, 훈련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오늘도 강력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역을 통해 5-10명의 초급 장교급 지도자들이 부상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가 인원은 70명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일인당 미화 100불 예산을 세웠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방된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자유롭게 돈을 벌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훈련장에 오는 장거리 열차 비용과 5일간의 숙식과 장소 대여비 모두를 계산하여 현지에서 1인당 100불로 계산한 것입니다. 훈련을 위해서는, 훈련생이 있어야 하고, 전문적인 훈련자가 있어야 하며, 소요 경비가 조달되어야 하고, 훈련에 필요한 좋은 자료를 준비하고, 전체적인 진행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재능를 가진 경험있는 스태프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의 우리 훈련은 항상 "기적" 가운데 공급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우크라이나입니까? 제 자신은 오랜 동안 이 질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바드의 역사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오래 전에 쓴 '문명의 충돌'에서,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것이 바로 여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를 가르면서 흐르는 아름다운 드네프레 강이라고 하면서, 그곳을 무시무시한 동서 문명의 충돌 지점이라는 씨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러시아의 총리 푸틴은 만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충동질하여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동과 서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주님의 제자 안드레가 핍박을 피해 복음을 전한 곳, 815-885년 사이에 콘스탄틴 성을 가진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의 슬라브어 문자화와 선교 사역, 999년 이해 블라디미르로 인한 러시아 정교회국가로 부상하게 된 오랜 동안의 기독교 문화, 서방 카톨릭과 동방 교회간의 미묘한 관계는 비록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러시아 정교회의 원조국이지만 아직도 그 유산이 보존되도록 해 왔던 민족, 한국 민족처럼 스탈린 시대 전부터 전 세계에 해외 국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가슴에 눈물진 한을 갖고 사는 민족, 한국 전쟁 때는 젊은이들이 쏘련군으로 와서 목숨을 버리고 간 민족, 인구 4700만의 이 긴 기독교 역사의 명목상의 기독교 국가로 변해 버린 나라..., 다만 뭔가 하나님의 뜻이 계신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장차 선교사를 많이 배출하여 러시아어권과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많이 (마치 한국 교회처럼) 보낼 나라인 것만은 보입니다. 이 일에 우리를 사용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놀랍습니까? 계속하여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십시오. (이순정 목사 올림)
목회 칼럼: 다시 교회를 생각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커뮤니티가 뒤틀려 있거나 아예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을 떠난 이 땅의 인간들이 입은 가장 큰 타격은 바로 이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커뮤니티 없이, 우리는 참된 인간이 될 수도 없고, 도리어 기괴한 모습의 인간들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까닭은 분명 바로 이런 절박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그래서 교회를 두고 주님의 가정이오, 새로운 커뮤니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역교회들은 이 땅의 커뮤니티 부재와 뒤틀린 커뮤니티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 땅의 커뮤니티보다 도리어 더 칙칙한 색깔을 띄고 있지 않은가?!
어디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일까? 우리를 궁극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기구도, 인간적인 지도자도, 트렌디한 설교나 음악이나 또 어떤 프로그램도,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조차 참된 커뮤니티로 꾸리지 못하는 까닭은, 건물이 시원찮아서도, 조직이나 기구가 없어서도, 지도자가 나빠서만도, 프로그램이 없어서도, 사명선언문이 없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님, 그 마음을 본받아서 서로 서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 낮아지려는 마음, 서로 귀하게 여기고 보듬으려는 마음,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殺身成仁하려는 마음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도리어 여전히 내가 유익을 얻고, 내가 대접을 받고, 내가 인정을 받고, 내가 [남보다] 잘되어야겠다는 마음,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키고, 헐뜯기까지 하는 그 마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우리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다름 아닌 주님의 몸, 곧 주님의 마음이 신경과 핏줄처럼 연결되어 온 몸에 고루 퍼져서 그 영향력을 나타내는 커뮤니티이다. 교회 창립 35돐을 맞아, 과연 우리 개개인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새로이 지음을 받은 사람들인지,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주님의 마음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매듭과 옹이는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성육신하시기까지 우리를 보듬으신 우리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세워나가자. 그리하면 머리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까닭은 분명 바로 이런 절박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그래서 교회를 두고 주님의 가정이오, 새로운 커뮤니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역교회들은 이 땅의 커뮤니티 부재와 뒤틀린 커뮤니티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 땅의 커뮤니티보다 도리어 더 칙칙한 색깔을 띄고 있지 않은가?!
어디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일까? 우리를 궁극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기구도, 인간적인 지도자도, 트렌디한 설교나 음악이나 또 어떤 프로그램도,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조차 참된 커뮤니티로 꾸리지 못하는 까닭은, 건물이 시원찮아서도, 조직이나 기구가 없어서도, 지도자가 나빠서만도, 프로그램이 없어서도, 사명선언문이 없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님, 그 마음을 본받아서 서로 서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 낮아지려는 마음, 서로 귀하게 여기고 보듬으려는 마음,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殺身成仁하려는 마음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도리어 여전히 내가 유익을 얻고, 내가 대접을 받고, 내가 인정을 받고, 내가 [남보다] 잘되어야겠다는 마음,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키고, 헐뜯기까지 하는 그 마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우리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다름 아닌 주님의 몸, 곧 주님의 마음이 신경과 핏줄처럼 연결되어 온 몸에 고루 퍼져서 그 영향력을 나타내는 커뮤니티이다. 교회 창립 35돐을 맞아, 과연 우리 개개인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새로이 지음을 받은 사람들인지,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주님의 마음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매듭과 옹이는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성육신하시기까지 우리를 보듬으신 우리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세워나가자. 그리하면 머리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2008년 8월 4일 월요일
설교 본문 연구: 엡 2:1-10 자기를 부인하는 삶: 뒤바뀐 인생의 목표
1. 바울은 이전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상태를 한 마디로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죽은 상태에 놓이게 된 까닭은 무엇때문인가? (1절)
2. 그 때 우리의 삶의 양태는 어떠했나? (2-3절)
3.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무엇에 근거하여서인가? (4절)
4. 5-6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연합]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세 가지 동사는?
5. 바울은 이 세 동사를 다 과거 시제(aorist)로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의미와 강조점은 무엇일까? (물론 미래적인 측면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 참조: 롬 8:15과 23절을 서로 비교해 보라.)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연합시켜 주신 것(연합한 것으로 count해 주시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7절)
8. 8절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믿음인가, 구원인가, 은혜인가?
9. '우리는 그의 만드신/창조하신 바'라는 말은 다시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요약해 준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바, 우리를 새로이 창조하신(참조 고후 5:17, 갈 6:15) 목적은 무엇인가?(10절, 참조 1:4)
10. (에베소서 전체의 문맥에서) "선한 일"은 어떤 일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참조: 빌 2:13)
다음 주 말씀: 자기를 부인하는 삶: 신령한 것과 일상적인 것의 잘못된 구분(막 7:1-23)
2. 그 때 우리의 삶의 양태는 어떠했나? (2-3절)
3.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무엇에 근거하여서인가? (4절)
4. 5-6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연합]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세 가지 동사는?
5. 바울은 이 세 동사를 다 과거 시제(aorist)로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의미와 강조점은 무엇일까? (물론 미래적인 측면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 참조: 롬 8:15과 23절을 서로 비교해 보라.)
6.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연합시켜 주신 것(연합한 것으로 count해 주시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7절)
8. 8절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믿음인가, 구원인가, 은혜인가?
9. '우리는 그의 만드신/창조하신 바'라는 말은 다시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요약해 준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바, 우리를 새로이 창조하신(참조 고후 5:17, 갈 6:15) 목적은 무엇인가?(10절, 참조 1:4)
10. (에베소서 전체의 문맥에서) "선한 일"은 어떤 일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참조: 빌 2:13)
다음 주 말씀: 자기를 부인하는 삶: 신령한 것과 일상적인 것의 잘못된 구분(막 7:1-23)
목회 칼럼: 목적이 분명한 인생
누군가 이민생활을 빗대어, 빌빌(bills after bills)하는 인생이라 했던가?! 그러나, 어찌 페이먼트 하다가 인생이 끝나서야 쓰겠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목적 있는 인생"(Purpose-Driven Life)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면, 우리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성경은 구체적인 목표를 획일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이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공통적인 가치들(core values)을 제시한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우리는 언제나 조물주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그리고 또 우리 이웃들 간에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사람보다 돈이 더 대접을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가치에 따라 인생의 목표를 정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도리어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기로 말하자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 만하신 분이 또 있으랴?! 비록, 무지한 세상은 그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평가하겠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선적인 가치를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며 또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셨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따라 죽으심으로써, 우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또 우리에게 참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 부인'을 요구하신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주된 까닭은, 이처럼 뚜렷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채, 그저 이 시대의 풍조/가치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안목이 이 세상의 물질적인 쾌락에 온통 사로 잡혀 있는 이상, 敬天愛人의 고상한 가치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며, 고상하지도 보람되지도 않은 부끄러운 종말을 향해 방황하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목장 교회 교우들은 그저 빌빌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목적있는 인생이 다 되도록 하자. (2005년 10월 30일 주보에서)
그러면, 우리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성경은 구체적인 목표를 획일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이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공통적인 가치들(core values)을 제시한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우리는 언제나 조물주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그리고 또 우리 이웃들 간에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사람보다 돈이 더 대접을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가치에 따라 인생의 목표를 정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도리어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기로 말하자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 만하신 분이 또 있으랴?! 비록, 무지한 세상은 그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평가하겠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선적인 가치를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며 또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셨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따라 죽으심으로써, 우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또 우리에게 참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 부인'을 요구하신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주된 까닭은, 이처럼 뚜렷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채, 그저 이 시대의 풍조/가치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안목이 이 세상의 물질적인 쾌락에 온통 사로 잡혀 있는 이상, 敬天愛人의 고상한 가치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며, 고상하지도 보람되지도 않은 부끄러운 종말을 향해 방황하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목장 교회 교우들은 그저 빌빌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목적있는 인생이 다 되도록 하자. (2005년 10월 30일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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